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이자 액셀러레이터로 올해로 열 여덟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2000년에 처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도, 액셀러레이팅이라는 용어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벤처 인큐베이팅’이라는 표현을 주로 썼습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이나 벤처 인큐베이팅 모두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되어 국내로 도입되었는데 지금의 액셀러레이터들처럼 활성화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도 인큐베이터를 자처하는 팀들이 제법 되었습니다. 선배들이 정보를 주셔서 알게 된 것이지만, 국내에 민간 벤처 인큐베이터가 최초로 설립된 건 1998년이었고 저는 199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창업을 하면서 신문을 통해 인큐베이터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제가 이 일을 직접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당시의 인큐베이터들은 아쉽게도 오랜 기간 존속되지 못하고 사라져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인큐베이터 또는 액셀러레이터로 활동하는 사람은 아마 제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단기간에 대박을 기대하고 이 업에 뛰어든 분들은 인큐베이팅이 오랜 기간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며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헝그리한 창업자 출신이었던 저는 창업자들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이 일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어려운 시절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지금까지 두 번의 창업 열풍이 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인터넷을 타고 90년대 중후반에 불어닥쳤습니다. 이 당시에 인큐베이팅이 활발했다면 아마도 창업생태계가 더 발전할 수 있었을 겁니다. 포텐셜은 가지고 있지만 사업화 경험이 없는 예비창업가들을 성공적인 창업으로 이끄는 것이 인큐베이터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에는 인큐베이팅 전문가가 없었습니다. 인큐베이터로 가장 적합한 인재는 창업가들인데 당시에는 창업가로서 성공 경험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에 인큐베이터로 활동하던 분들은 모두 비창업가 출신이었습니다. 2010년 전후 전세계적인 창업 열풍에 편승하여 대한민국도 두 번째 창업 열풍을 맞았습니다. 현재의 창업생태계를 활성화시키고 있는 주체는 액셀러레이터라고 단언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현재의 액셀러레이터들 상당수가 성공한 창업 경험을 가진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창업과 투자유치, 엑싯 등 창업의 과정에서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사안들을 직접 경험한 창업 선배로서 이들에게는 경험이 일천한 후배들을 가이드할 수 있는 역량이 쌓여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창업생태계의 시작을 저는 1981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1981년은 대한민국 최초의 벤처캐피탈인 KTB네트워크의 전신,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가 설립된 해입니다. 정부는 ‘기업체의 기술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1980년 12월 31일 기술개발주식회사법을 제정, 공포하면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 회사는 투자보다는 융자에 무게가 있었는데 가치는 있으나 모험이 필요한 기술에 장기저리로 자금을 공급해줌으로써 기술 개발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를 폐지하고 과학기술처 산하 한국종합기술금융주식회사로 전환되면서 투자영역이 확대됐고, 민영화 과정을 거쳐 1999년 KTB네트워크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 기간동안 대한민국 창업 관련 기본법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창원지원법이 1986년에 제정됩니다. 이후 벤처기업 업계를 대변하기 위해 1995년에 벤처기업협회가 설립되고 협회의 건의로 1996년 코스닥(KOSDAQ) 시장이 개설됩니다. 1997년에는 벤처기업육성에관한특별조치법이 제정됩니다. 1981년부터 1999년까지 약 20년의 기간을 저는 대한민국 창업생태계의 뼈대가 만들어진 기간으로 보는데 이런 내용을 보아도 정부가 대한민국 창업생태계 형성의 주역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3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부가 창업생태계의 중심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창업생태계의 뼈대가 완성된 90년대 말 즈음 인터넷 열풍으로 형성된 버블이 터지면서 2000년대는 소위 ‘벤처 암흑기’가 되어버립니다. 묻지마 투자 열풍에 국민 다수가 피해자가 되면서 이 때는 벤처한다고 하면 사기꾼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정부도 이 시기에는 오히려 창업을 제한하는 제도까지 만들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혼란기와 정체기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벤처 자본시장을 사실상 벤처캐피탈이 독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벤처 투자는 위험하다는 의식이 자리잡으면서 아무도 벤처에 투자를 하지 않게 되자 정부가 이 시장을 받쳐주지 않을 수 없었고 벤처캐피탈을 통해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면서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을 육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 창업생태계는 최근까지 수 십년 동안 벤처캐피탈의 자본시장 독점 체제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전세계적인 창업 열풍이 불게 되고 국내에도 액셀러레이터들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합니다. 성공한 창업가들이 엑싯한 자본을 들고 창업생태계로 들어오면서 드디어 벤처캐피탈이 아닌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게 됩니다. 돈 되는 기업 발굴에 항상 목말라 있지만 자체 발굴 능력이 떨어지던 벤처캐피탈들은 인지도 있는 액셀러레이터가 발굴한 초기 기업들에 주목하게 되면서 ‘액셀러레이터의 초기 투자 – 벤처캐피탈의 후속 투자’라는 ‘자본의 연결고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기간동안 정부도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 바로 엔젤투자 활성화정책과 TIPS 제도를 도입한 것입니다. 스타트업에게 초기 자본을 공급하는 엔젤투자 활성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정부가 엔젤 투자에 따른 세제 혜택과 엔젤 매칭 펀드 제도를 도입하면서 엔젤 투자가 큰 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식 TIPS 제도를 통해 초기투자+기술개발비 패키지를 제공함으로써 상당한 기술개발비가 필요한 스타트업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형태와 지원 단계가 다양한 자본이 창업생태계에 유입되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의 창업생태계는 한반도 유사 이래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규제가 창업생태계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규제 이외의 인프라, 특히 공간과 자본은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활성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더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자본의 관점으로 창업생태계를 조망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현재의 창업자본 시장의 특징을 하나 꼽으라면 다변화(多邊化)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오랜 기간 벤처캐피탈이 독점해오던 창업자본시장에 이제는 외국계 VC, 사모펀드, 투자자문사, 자산운용사, 증권사까지 가세하면서 바야흐로 대한민국 창업자본 시장은 춘추전국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벤처캐피탈들은 기회와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자금을 정부가 창업생태계에 쏟아부으면서 많은 벤처 펀드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과거보다 LP(펀드 출자자)를 구하기는 쉽지않아졌습니다. 경쟁 자본이 등장하면서 본의 아니게 갑의 위치에 있던 벤처캐피탈들도 이제는 startup friendly로 변신해야만 좋은 팀에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장에 자금이 넘치기 때문에 좋은 스타트업은 투자를 골라서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창업자본시장의 다변화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하더라도 현재의 창업자본시장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에서 더 개선이 필요할까요? 아직은 자본 시장의 스케일 자체가 작다는 점도 있겠지만 한 가지를 꼽으라면 자본시장의 연결고리가 빈약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스타트업은 자본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자본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아쉽게도 아직 대한민국 창업자본시장은 그렇지 못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유니콘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사실 자본의 연결고리가 잘 형성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씨드 단계에서 A가 투자를 하면 그 다음 단계는 B, 또 그 다음 단계는 C가 투자를 해주는 역할분담 체제가 만들어지면서 밸류를 연속적으로 높이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창업자본시장은 아직까지는 각각의 투자 주체들이 ‘따로 노는’ 상황입니다.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가 바로 1억에서 3억 사이의 구간입니다.

 

액셀러레이터와 개인(엔젤)투자조합이 몇 천만원에서 약 1억원까지의 투자 구간을 커버해주고 있고, 과거에는 10억 전후로 투자하던 벤처캐피탈들이 이제는 창업초기 펀드를 통해 3억까지 투자 구간을 넓혔습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이 death valley를 통과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시기가 바로 1 ~ 3억의 투자금이 필요한 구간인데 이 구간은 여전히 취약합니다. 이 문제에 주목해 해법을 제시한 곳이 SBA(서울산업진흥원)였습니다. 처음 이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만 해도 벤처캐피탈들의 빈축을 샀지만 지금은 수 십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간을 채워주는 곳이 SBA 한 곳에 불과하고 수 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저 역시 자본의 연결고리가 완성되어야 창업자본시장이 더 활성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해법을 고민하다가 드디어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습니다.

 

양질의 스타트업들이 많이 등장하고 정부가 좋은 정책으로 지원한 덕분에 엔젤 투자는 과거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엔젤 투자가 소액 투자자들의 연합체(조합)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더 많은 엔젤투자자의 시장 진입을 촉진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존과 다른 방식인 ‘엔젤투자 플랫폼’ 엔젤링크(angelink)를 런칭하게 되었습니다. 엔젤링크는 포텐셜 높은 스타트업과 양질의 엔젤 투자자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엔젤투자 정보 공유 플랫폼입니다.

 

엔젤투자를 유치하고 싶은 스타트업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신청한다고 모든 스타트업이 플랫폼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청 후 엔젤링크 팀의 객관적인 사실 검증을 거쳐 최종 선정이 됩니다. 검증된 스타트업만 플랫폼을 이용하게 함으로써 플랫폼의 신뢰도를 높일 것입니다. 물론 절차는 빠른 속도로 진행됩니다.

 

투자자도 아무나 이름을 올릴 수 없습니다.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신청 후 나름의 검증 과정을 거친 다음 연회원으로 등록해야 엔젤링크 회원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에 정말 도움이 되는 양질의 투자자만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투자자 리스트에 등록된 분들만 플랫폼에 올라오는 기업들의 상세 자료를 받아보실 수 있고 자료 검토 후 관심기업만을 선정하여 별도의 미팅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도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됩니다.

 

엔젤링크는 크라우드 펀딩도 아니고 엔젤투자조합도 아닙니다. 스타트업은 ‘데스벨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자금 뿐 아니라 아이디어와 열정을 꽃피워줄 믿을 수 있는 멘토가 될 진정한 엔젤 투자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엔젤투자자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스타트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멘토로서, 엔젤투자 생태계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인 만큼 초반에는 크립톤 주도로 할 수 밖에 없지만 어느 정도 검증이 끝나는 내년 상반기부터는 국내를 대표하는 창업지원기관들과도 함께 하려고 합니다. 검증된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씨드 투자를 유치한 기업들이 엔젤링크에서 투자를 유치하고 그 다음 단계인 초기 VC 투자도 연결해주는 연결고리로 만들어보겠습니다. 내년 하반기 정도에는 엔젤링크 자체 펀드도 만들어 매칭 투자까지 할 계획입니다. 엔젤링크를 통해 국내 창업자본시장에 빈약한 연결고리가 완성되기를 바래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